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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여행]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 당일치기 가이드(#1)


'꽃보다 할배' TV 프로그램에서도 방영된 체스크 크룸로프!! 프라하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가이드입니다.

모라비아에(브르노 남서쪽) 있는 모라프스키 크룸로프(Moravský Krumlov)와는 다르게 구별됩니다.

체스키는 체코어로 '보헤미아의 것'을 의미하며, 크룸로프트 '강의 만곡부의 습지'라는 뜻으로

독일어의 크루메 아우에(Krumme Aue)를 어원으로 합니다.






체스키 크룸로프 현판 사진인데요, 체코가 공산국가였던 시절에는 낙후된 시골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체스키 크룸로프는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 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요, 300개 이상의 건축물이 문화유적으로 등록 되었다하니 도시 전체가

유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체스키 크룸로프 역사'가 궁금하신 분은 본문 아래에 따로 포스팅해 놓은 글을 참고해 주세요~!!



체스키 크룸로프 성 사진인데요, 13세기 고딕양식, 15세개의 르네상스양식,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으로 개보수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도시의 크기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성은 비대해 지게 되었어요. 세계 300대 성에 포함되어 있고, 체코에서는

프라하 성 다음가는 크기의 성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간략하게 여행하는 순서를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먼저 체스키 크룸로프 버스 정류장

( Český Krumlov bus station)에 내리는 기준으로

부데요비츠카 문 → 에곤쉴레 아트센터 성 → 비투스 성당 →세미나르 정원 → 시청광장 →

흐라덱 → 망또다리 및 전망대 → 자메츠카 정원 순입니다.



예전에는 체스키 크룸로프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열개의 출입문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중

유일하게 원형 형태로 남아있는 문이에요. 문 상부에는 당연히 해시계가 있어요.

버스정류장에서 부데요비츠카 문 방향으로 접어들면서부터 이발사의 다리까지를 라트란(Latrán)

거리라고 해요. 이 라트란 거리에는 성에 소속된 시종과 하인들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이발사의 다리에는 슬픈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이 내용도 글 하단에 따로 적어 놓겠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중세당시 크룸로프 성에 납품하던 상인들이나 평민들이 거주했던 구시가지가

시작됩니다. 드로우하를 경유하여 슈이로카 거리로 접어들면 에곤쉴레 아트센터가 있어요.

체코에 왠 오스트라아 미술가 아트센터가?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여기에는 에골쉴레의 외갓집이에요.

에곤쉴레는 대도시 비엔나의 번갑함을 피해 종종 조용한 외갓집에 와서 작품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에곤쉴레의 작품 사진입니다.



체스키 크룸로프 당일 여행 포스팅에 언급된 지역을 한눈에 잘 보실 수 있도록 표시해

보았습니다. [사진출처 : 구글맵]

이상으로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를 당일치기로 여행할 수 있는 포스팅 1부를 마치고,

성 비투스 성당과 세미나르니 정원, 흐라덱(Hrádek)이라 불리우는 성탑, 체스키 크룸로프 성과

자메츠카 공원 등을 둘러보는 포스팅은 2부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여기 클릭)


이 글의 사진과 정보는 '좋은여행(주)'에서 제공한 것으로 모든 권한은 '좋은여행(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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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스키 크룸로프(Český Krumlov) 성의 역사

1250년 남 보헤미아의 부호 비트코비치(Vitkovci) 가문의 비텍(Vitek)이 고딕양식의 성을 쌓으면서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1302년 비텍의 사망 후, 비텍의 아들이 가주인 로젠베르크(Rosenberg) 가문이 성을 상속받아 300여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300여년의 로젠베르크 가문의 통치와 함께 도시와 성이 가장 번창하였고, 16세기 후반 시대의 흐름에 맞게 르네상스 양식으로 리노베이션 하게 됩니다.

로젠베르크 가문의 마지막 영주인 페트르 보크(Petr vok)는 1601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에게 크룸로프 성 등을 판매할 것을 강요당하게 되고, 루돌프 2세는 짧은 기간내에 아들 율리우스(Julius)를 크룸로프로 보냅니다.

크룸로프 성은 약 20여년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소유하게 되며, 30년 전쟁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에겐베르크(Eggenberg) 가문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1622년 크룸로프 영지를 에겐베르크 가문에게 증여하게 됩니다.

30여년 전쟁이 종료된 후 에겐베르크 가문은 바로크 양식의 공연장을 신축하고, 성을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하였으며 1680년대에는 농업, 건축 활동 및 예술을 보다 집중적으로 개발하게 됩니다.

1719년 에겐베르크 가문이 후계자 없이 사라지자 오스트라이의 유력 가문이 슈바르첸 베르크(Schwarzenberg) 가문에서 크룸로프 성과 영지를 계승하게 됩니다.

일찍이 슈바르첸베르크 가문의 요제프 아담(Josef I. Adam)은 창조적인 성격을 보였으며, 솜씨 좋고 진취적인 사업가 일 뿐 아니라 예술분야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성곽을 광범위하게 재건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18세기말 특히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예술과 경제의 장기 침체기가 뚜렷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1947년 체스키 크룸로프 성을 포함한 슈바르첸베르크 가문의 재산은 체코 지방 재산으로 이전되었고, 지방 시스템이 폐지된 후 195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산이 되게 됩니다.

구 동구권이 무너지며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평화로운 이혼을 했고, 1992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선정되게 됩니다.

체스키 크롬로프성은 세계 300대 성에 포함되었으며, 체코 내에서는 프라하 성 다음으로 규모가 큰 성입니다.

※ 이발사의 다리 전설

17세기 초 프랑스, 시칠리아를 제외한 전 유럽을 다스리던 죽을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루돌프 2세라는 사람이 있었어요.(사실은 결혼만 안했다 뿐이지 여러 여성들로부터 여러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네요.)

그 자녀 중 한명인 율리우스(Julius)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율리우스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루돌프 2세는 경치좋고 산세 좋은 체스키 크룸로프성에서 요양을 하라고 지시를 합니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요양을 취하던 율리우스는 어느날 어여뿐 이발소집 딸을 보게 되었는데, 한눈에 반한 율리우스는 갖가지 방법과 끈질긴 청혼으로 이발사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어느날 정신질환이 갑자기 심해진 율리우스는 밤에 이발사의 딸을 잔인하게 살해하게 되는데 다음날 정신을 차린 율리우스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누가 자신의 부인을 죽였느냐고 하면서 범인이 나올때까지 마을 사람들을 한명씩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실제로 마을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견디다 못한 이발사는 '내가 죽였소'라고 거짓 자백을 하게 되고, 율리우스는 장인인 이발사를 죽인 다음에야 마을 사람들을 죽이던 일도 그치게 되었답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그 이발사를 기리기 위해 다리 이름을 '이발사의 다리'라고 불리게 되었는데요, 이발사의 다리 중앙에는 못박힌 예수님상과 체코의 수호성인인 얀 네포무크 상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